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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3월 31일 오후 2시경, 서울○○경찰서에 '골목길에 시체가 있다'는 신고 전화가 걸려 왔다. 그 신고 전화를 토대로 사건 조사와 목격자 증인 신문을 위해 강력계 형사들이 현장으로 향했다.

"이제 시체를 보는 것도 아무 감흥이 없다 생각했는데."

최 형사가 피해자의 시체를 먼발치에서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직업이라는 게 이렇게 무섭다. 한 때는 부패가 진행되지 않은 시체만 봐도 헛구역질이 나서 그날 끼니를 거르곤 했는데 말이다.

"...저건 좀 심하군."

난도질 당해 피 칠갑이 되어 얼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시체였다. 칼같이 예리한 무언가로 수차례 찔리고, 베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발적으로 찌른 흔적이 아니었다. 숨통이 끊어지고도 여러 번 베었을 것이다.

"으... 전 못 보겠어요. 최 형사님..."

아직 한참 짬이 낮은 윤 형사는 시체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윤 형사 앞이라 애써 의연한 척했지만, 최 형사도 이런 건 적응이 되지 않는다.

"시체 앞에서 감정 가지지 마. 정 힘들면 골목 밖에서 목격자 신문이라도 하고."

피해자는 시각 디자이너 이 연주(32)씨. 대략 이틀 전 변을 당한 듯했다. 골목 안엔 유리 파편이 가득했으며, 혈관이 절단된 듯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 이런 악질 범행이 만에 하나 묻지 마 살인이면 연쇄 살인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한시라도 빨리 진상을 알아내야 한다.

"아, 네! 그럼 신문 후 말씀드리겠습니다."

허둥저둥 목격자를 찾아가는 윤 형사.

'흉기도 발견되지 않았으니, 간접 정보들로 찾을 수밖에 없나.'

그나마 건진 소득이라면 피해자가 NEIGE 라고 휘갈겨 적은 메모를 발견한 것. 지갑 속 덧대어 놓은 여분 공간에 접혀 놓여있었다.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거라는 걸 피해자는 이미 알고 있었을까. 추측이 꼬리를 물어가며 지루한 시간을 긁어 갔다.

"형사님 뭐 좀 나왔습니까?"

답답한 상황, 꽤 늦어질 현장 감식. 느지막이 도착한 서울 과학 수사대 때문이었다. 이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과학수사대원이 질문을 건네왔다. 최 형사는 속으로 '저러고도 월급을 받나?' 라고 혀를 차려다, 비단 바쁜 건 강력계뿐이 아닐 거라는 걸 깨닫고 공상을 그만뒀다. 지금은 일에 집중해야 했다.

"지문과 머리카락 등 용의자를 특정할 만한 정보가 다수 나온 상태입니다. 가서 일 보세요."

살해 현장이 담긴 CCTV가 있다면 좋았을 텐데, 외진 골목 안까진 없는 듯했다. 근처에 주차된 차량도 없어 블랙박스를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

"총 네 명의 흔적이 나왔습니다. 근데 한 명은 피해자니까.."

저건 대체 무슨 화법이야 라는 의문이 절로 드는 답변이었다. 그래서 피해자 포함 셋이라는 건지, 넷이라는 건지.

"지금 바로 감식 결과대로 임의동행 절차 진행하겠습니다."

한숨을 짧게 쉬고 가볍게 뒷머리를 만진 최 형사가 말했다. 감식 결과를 직접 확인해 보니 용의자는 세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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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말해 두지만, 전 하루 종일 회사에 있었고, 일만 하다 오는 길입니다. 살인 같은 건 절대 관련 없습니다. 귀찮은 일이 싫은 성격이라 온 거니 빨리 끝내시죠."

첫번째 용의자. 가장 먼저 임의 동행을 요한 회계사 허성태(31). 깔끔한 복장이며, 용의자 신문을 받는 것이 크게 불쾌한 눈치였다.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차후 참고인 여비 신청서를 작성하시면 보상 해 드리겠습니다. 우선 피해자와는 어떻게 알고 계시는지, 또 인근 CCTV를 살펴보니 골목에서 꽤 오랫동안 나오시지 않던데, 무엇을 하고 계셨나요?"

최 형사는 짧게 메뉴얼대로 답하고는 예리한 눈빛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연주 씨에게 제 명함 디자인을 맡겼고, 결과물은 아직 못 받은 상태입니다. 골목에선.. 야근 후 자가용을 몰고 집으로 가고 있는데 타이어가 헛돌지 뭡니까. 새벽에 업체를 부를 수도 없고 직접 타이어를 바꿨죠. 여분 타이어는 챙겨놨는데, 이래 봬도 제가 간단한 정비는 아버지에게 배웠거든요. 자동차 정비공이시고요. 그게 다입니다. 근데... 에휴, 말로 해서 뭐하나. 직접 차에 가서 보시죠."

허성태는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다 뭔가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른 듯 주차장으로 안내했다. 약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최 형사가 따라나섰다.

"보세요."

허성태의 자동차 오른쪽 뒷바퀴 타이어는 새 타이어였다. 다른 타이어는 안쪽이 마모되어 있는 걸 보아 진술과 어긋나지 않는다.

"타이어를 바꾼 걸 확인시키려 절 부른 겁니.."

최 형사의 말은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아뇨. 진짜 보셔야 할 건 이겁니다."

허성태는 급하게 끼어들며 자신의 자동차 트렁크를 차 키로 열어 보였다. 그 속엔 유리 조작이 잘게 붙은 채 여러 곳이 펑크가 나 망가진 타이어가 있었다.

"하.. 형사님. 처음에 교체한 타이어인데, 헛도는 게 유리 조각을 밟고 펑크 난 거더라고요. 이 근처엔 공사장도 없는데, 유리가 쫙 깔렸었다니까요. 누가 골목에 유리를 무단 투기한 거 같은데 이건 뭐 어떻게 처벌 안 됩니까 이 정도면 고의입니다. 고의. 사람이 죽은 건 참 안타깝지만, 이것도 뭐, 그, 사람 죽인 사이코패스가 한 짓일지 누가 아냐고요."

억울한 듯 열변을 토하며 유리를 버린 범인을 잡아 달라고 말하는 허성태.

"...저희는 강력계고, 그런 건 구청이나 동사무소에 민원 넣으세요. 일단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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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이라니 몹쓸 일을 다 보는구먼. 내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느낀 게 있다면, 나무는 절대로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사람은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말이야. 그러면서 이렇게 목숨까지 빼앗지 않나. 얼마나 한심한지고..."

두번째 용의자. 나이가 지긋한 노인, 수목학자 김갑구(68). 깁갑구는 언뜻 산신령처럼 보이는 긴 수염을 가진 백발의 노인이었다. 직업 때문일까, 매혹적인 나무 내음이 은은하게 퍼져 나온다.

"지금은 거동이 불편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진 못하지만, 그래도 이 땅에서 나를 따라올 사람은 없어. 이건 당연한 거라네. 나는 전쟁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나갈 때도 나무에 관심이 있었거든.."

"예,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만 지금은 진술하러 오신 거니 자제해 주시고요. 피해자와 알게 된 계기와 그 골목을 지날 때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 부탁하겠습니다."

이러다간 진술서에 한 문장도 적지 못할 거 같다는 예감이 들어 급박하게 화제를 돌리는 최 형사.

"나무, 관목, 덩굴 식물 등의 나무 식물을 연구하는 학문 분야, 그게 수목학이지. 젊은 형사 양반, 그대는 길가에 자라는 나무 묘목의 이름을 알고 있나?"

최 형사의 말을 듣기는 한 건지 깁갑구가 생뚱맞은 얘기를 꺼냈다.

"제 질문의 답변과는 관련 없어 보이는 데 필요한 얘기입니까?"

약간은 초조한 태도로 따지는 최 형사를 보며 껄껄 웃고는 노인은 말을 이어 갔다.

"그 골목길에, 미선나무가 있었지. 멸종위기종의 나무이혀. 우리 맏누이 이름도 김미선이었지. 어느 날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죽어 버렸지만 말이여. 그때는 의학 기술이 참 안 좋았어. 난 미선나무가 보일 때마다 죽은 누이가 나에게 인사하러 온 거라 생각하기로 했네. 난 그 골목에서, 누이를 만났다네."

자신이 골목에서 꽤 오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김갑구. 그의 말대로 가족 관계의 사망란에 '김 미선'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다.

"그리고 그 처자라면 난생처음 보는 사람이네. 같은 동네니 오고 가다 봤을 수도 있지만, 기억에 남는 일이 없는 걸 보면 만난 적이 없겠지. 젊은 나이에 그렇게 되다니 안타깝구먼..."

"잠깐, 유리 파편 같은 건 못 보셨나요 그 골목엔 유리 조각이 꽤 많은데."

짧게 마음속으로 김 연주에 대해 묵념을 하다 현재 상황과 모순되는 점이 떠올라 지적하는 최 형사.

"전혀 본 적 없네. 그랬다면 나무 묘목을 만졌을 때 유리 파편에 손을 다치지 않았겠나. 나무에 비료도 주고, 물도 주고 주변 토양도 유심히 살펴봤었건만 유리 같은 건 없었네."

최근에 난 상처는 전혀 없다는 듯 김갑구는 양손을 보여줬다.


"유리는 본 적 없다.. 네. 아무튼,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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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용의자는 온라인 램프(조명) 마켓을 운영하는 한세희(26). 젊은 나이에 인테리어 전공을 기반으로 사업에 도전했다고 한다.

"전 램프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캔들워머, 우드 조명, 무드등, LED 미니 조명, 빈티지풍 유리램프 같은 거... 여러 가지를 수작업으로 만들고, 인터넷을 통해 주문을 받으면 제작해서 배송 해 드리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녀는 약간 상기된 모습으로 차분히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말했다.

"조명 사업.. 네. 그럼 피해자와는 어떤 관계인지, 그리고 골목에서 무엇을 하셨는지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까지와 똑같은 질문을 녹음기처럼 던지는 최 형사.

"이연주 씨는 제 단골손님이시고. 최근에도 램프 주문을 하신 상태였어요, 거리도 꽤 가까워서 제가 직접 자동차에 택배 상자를 싣고 갔어요. 이 골목에서 뭔가 이벤트를 하시나 보더라고요. 아무튼, 배송지가 여기라고 해서 배송 해 드리고, 잔금 치르는 걸 기다렸는데 연락이 닿지 않아서 '어, 혹시 무슨 일이 있나' 했는데... 이러다가 저도 살해당하면 어떡해요 너무 무서워요."

두려움에 떠는 표정으로 진술을 이어가던 한세희는 감정이 북받친 듯 왈칵 눈물을 보였다.

"범인은 꼭 저희가 잡겠습니다. 혹시 피해자분이 주문한 품목이 어떻게 되죠"

우는 그녀를 진정시키려는 듯 최 형사가 두루마리 휴지를 건네주고 질문을 이어갔다.

"캔들워머 세트에요. 타이머랑 빛 조절 기능이 있고, 전체가 유리로 되어 있어요.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 할 때 주로 쓰이는 건데... 여러 개를 주문하셨어요. 구매 이후 자주 반품 요청을 하시기는 했는데, 저희 제품 불량이어서..."

조금 감정이 잦아 들었는지 이내 입을 떼어 말하는 한세희.

"네,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 형사님!!"

진술을 마무리하려던 그때, 윤 형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진술 끝났으면 잠시 얘기 좀..."

"어, 어어. 그래. 한세희씨, 진술은 끝났으니 가시면 됩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다급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에 덩달아 최 형사까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다. 범인의 흉기라도 나온 걸까,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건너편에 앉은 그녀를 향해 꾸벅 묵례를 하고는 윤 형사를 따라나섰다.

"무슨 일이야, 윤 형사. 그렇게 급하게."

약간의 기대감과 조금의 우려스러움을 담은 목소리였다.

"피해자 이연주 씨 말인데요. neige 라고 쓰셨잖아요. 검색해 보니 프랑스 사전에 있는 단어였어요. 겨울, 눈이라는 뜻이라고는 하는데 근데, 연주 씨가 프랑스어 전공이 아니라 영어 전공이더라고요. 의아해 하던 참인데 마침 선배, 아니 최 형사님이 생각나더라고요."

신입 형사보다는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 형사가 더 잘 알 수 있을 터. 실제로 사건을 몇 번 해결하기도 했으니 물어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잠시 수첩과 펜을 꺼내 무언가를 적어 대던 최 형사의 눈빛이 진중해졌다.

"그래... 그랬던 거였어."

사건의 진상을 깨달은 듯 수첩을 탁 소리나게 닫는 최 형사.

"이연주 씨는 프랑스어를 배운 게 아니야, 사전적 의미로 쓴 것도 아니고. 그렇다면, 다잉메세지에 따르면 범인은 그 사람이야."

최 형사는 귀여운 후배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

"정말 그것만 보고 알아내셨다고요 그래서 범인은 누구예요?"

존경의 눈빛으로 최 형사를 쳐다보는 윤 형사.

"범인, 흉기, 그리고 용의자가 골목을 지나간 순서는 바로.."


공시 준비 외에 하는 게 정말 많은 검찰공시생입니다. 현재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으나, 네이버는 상위 노출되는 블로그가 대부분 영양가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티스토리를 병행하게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티스토리를 함께 병행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이상 검찰공시생(미적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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